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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아사랑해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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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시'라는 단어 사용을 조심한다. 이 단어는 주로 예상이나 판단하는 말과 함께 쓰이며, 사람을 낙인찍는 기능도 있다.

나는 "쟤는 역시 노력을 안 해."라는 부모의 한 마디가 아이에게 어떠한 결과를 남기는지 너무 잘 안다. 낙담한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예상하는 그대로 행동하며, 서서히 부모를 증오한다.

그럼 좋은 의미로 '역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역시 우리 딸은 효녀야."
"역시 우리 아들은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내."

이러한 말들이 부모에게는 자녀를 향한 사랑 표현일 수는 있으나, 동시에 자녀들이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빼앗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말을 자주 듣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이 아이들은 언제나 효녀이어야만 하며 또한 무슨 일이라도 제대로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들은 타인의 미래 행동을 제한하는 말이다. 누구든 본인의 상황이 궁핍해지면, 효자, 효녀노릇을 하기 힘든 때도 찾아온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항상 듣고자란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본인의 자식을 좋은 아들, 딸로 정의 내리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으나, '역시'라는 단어의 사용은 예상이 함께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나는 득 보단 실이 많다고 본다.

그럼 이러한 단어를 사람들은 왜 만들었고, 또 왜 자주 쓰는 것일까?

이 단어는 사실 쓰는 사람들에겐 잠시나마 쾌락을 선사한다. 사람들 앞에서 부모는 본인의 자식을 자랑하며 일시적이나마 우월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단어만 있으면 부모는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그저 아이에게 달아놓은 꼬리표대로 아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면 되므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가 "쟤는 원래 저래."라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아이가 되고 부모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 역시 이 맛이지~!"

알던 맛이 그리울 때, 힘든 하루를 마치고 자주 가는 식당에 들를 때, 이때만큼은 이 단어가 참 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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