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 얼굴도, 체구도, 하는 짓도 똑 닮은 오빠와 나는 누가 봐도 남매지간이다. 어린 시절 아빠가 집 안의 그릇을 모두 깨고 부시며 엄마와 다투던 날들, 오빠는 늘 아빠에게 하던 말이 있었다.
"나는 그렇다 쳐요. 그런데 아빠는 핀아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나는 오빠의 이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빠는 우리 집에서 나의 상황을 공감해 주는 유일한 나의 보호막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사이가 나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빠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가 아빠와 엄마를 반 씩 닮았기 때문에, 서로 잘 맞는 성격적 무언가가 있다고 믿곤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우리 사이가 좋았던 이유는 오빠의 배려와 희생 때문이었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 사진첩 속, 갓난아기인 나를 안고 있는 오빠는 너무나도 어렸다. 내가 태어난 후부터, 오빠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어느 날 밤의 일이 기억난다.
나는 베란다에 락스를 잔뜩 뿌려놓고 한참 동안 바닥청소를 하였다. 청소를 마친 나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밤 12시 정도였을까. 그때 오빠는 집에 돌아왔다. 헛구역질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내가 구역질을 멈추고 나아져, "이제 괜찮은 것 같아. 잘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그도 잠을 이루지 않았다.
인도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태국에서 세 번이나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천운으로 살아났던 내가 또 계곡에 놀러를 간다고 했을 때도,
4년 동안 연애를 안 해서 너무 외로우니 그냥 아무나 만나보는 게 어떨까 오빠에게 연애 조언을 구했을 때도,
오빠는 특유의 시답지 않은 태도로 그냥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왜인지 그의 그런 조언을 잘 따랐다.
너무 무겁지 않은 태도로 그는 나를 항상 지켜왔던 걸까? 강경하게 나의 주장에 반대하면 오기가 발동해 이루고야 마는 나를 오빠는 꿰뚫어 보고 있던 것일까?
이제는 오빠가 새언니와 결혼을 하고, 예쁜 딸아이도 한 명 낳았다. 지금 나의 마음은 오빠가 그의 가족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과거와 현재, 내 곁을 지켜준 그에게 감사하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다.
핀아사랑해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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