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공장
"6교시는 정말 끔찍해요. 5시간 넘게 학교에 갇혀있어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올해 4학년이 된 준영이가 나에게 묻는다. 그는 나에게 1년여 전부터 영어를 배워오고 있는 아이이다.
"수업 시간에는 화장실도 안 보내줘요."
"그럼 배가 아프면 어떡해? 못 참을 수도 있잖아."
"진짜 급한 애들만 보내줘요."
그는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반응에 반신반의했다. 이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 이 아이가 모든 것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그는 민감한 성격 탓인지 순한 기질의 아이들보다 학교라는 장소를 폭력적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지금 선생님은 훨씬 나은 거예요.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해오면, 뒤에 나가서 손들고 서 있으라고 했어요. 그럼 앞에 있는 20명의 아이들은 뒤에 혼자 서있는 아이를 쳐다보고, 숙제를 안 해온 아이는 뒤에 서서 울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계속 말하세요.
"저 숙제 안 해온 애 좀 봐라. 쟤는 왜 저 모양이니? 숙제도 안 해와. 쯧쯧"
너와 나는 단짝 친구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에게 영어를 배워온 소희는 현재 중학교 2학년이다. 그녀는 학교 영어시험에서 항상 100점을 맞는 아이지만, 나는 사실 그녀의 다른 부분들이 더 걱정이다.
"반에 친한 애 있어?" 나는 평소 내성적인 소희의 친구 관계가 걱정되어 그녀에게 물었다.
"한 명 있어요."
"정말? 어떤 아이야?" 친구가 있다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안도감을 느껴 되물었다.
"우리 반 1등이에요. 과제랑 시험 범위 같은 걸 잘 알려줘요. 물론 한 문제 틀렸다고 울 때는 재수 없지만, 적어도 얘랑 친구 하는 건 나에게 득이 돼요. 엄마가 저한테 도움이 되는 애랑 친구 하라고 했거든요."
소희의 어머니는 나에게 늘 친절하시다. 그녀의 취미는 꽃꽂이로, 소희의 책상 위에 꽃 병이 올라온 날이면 나는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소희는 그 꽃 병 때문에 도통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는 늘 남아있지도 않은 손톱에 피가 나도록 물어뜯으며, 그 병이 행여나 쏟아질까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소희의 엄마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꽃꽂이 대회에 참여했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보라색과 초록색 꽃들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 꽃들이 정말 예쁘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싸늘했다.
"1등도 못 했는걸요. 그럼 아무 의미도 없는 거죠."
내 아이는 의지박약
오늘은 고등학생 2학년 다솜이의 수업이 있는 날이다. 다솜이는 중학생 때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으로, 공부를 잘해 명문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희의 어머니는 최근 금요일만 되면 조퇴를 하는 소희가 걱정이시다.
"애가 의지가 약해요. 선생님. 잠이 부족하면 자꾸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잠을 조금 자는 것도 아니거든요? 고등학생들이 다 1시에 자지. 안 그래요? 우리 때는 새벽 2시에 잤는데.."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고 교실에 들어가자 담배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 냄새, 10년 전부터 명문고 수업을 할 때마다 맡아온 냄새이다.
*
나는 영어강사라는 나의 직업을 사랑했다.
"네가 미래에 어떤 물건을 만들든, 어떤 기술을 배우든, 너는 영어를 이용해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영어를 왜 배워야 하냐며 투덜대는 학생들에게 내가 종종 했던 말이다. 나는 가르침을 통해 아이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고, 실제로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나의 일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걸림돌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진심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학부모님들에게 아이의 행복 따위는 시험을 잘 보게 해야 하는 영어 강사가 하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나는 학생들이 극한의 일정을 소화하도록 밀어붙여야 하는 그런 자리에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밥도 못 먹고 바로 학원에 왔으며, 내가 내준 숙제를 새벽까지 해내야만 했다.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그들은 불행해 보였고, 위태로워 보였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 공부 일정을 함께 짜서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은 보람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중학생까지는 누구나 노력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학교 시험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영어는 다르다. 고등영어는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점수가 잘 나오기 힘들다. 나는 수업을 진행하면 3개윌 뒤 이 학생이 몇 점이 맞을지 이미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학원에 소속된 강사인 내가 점수가 오를 기미가 없는 학생의 부모님에게 돈 낭비하지 말고 학원을 끊으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해서 부모들은 큰 액수의 돈을 학원비로 내야만 했고, 그러한 그들의 부담은 곧 학생에게도 전달되었다. 나는 이렇게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부모에게도, 그리고 학생에게도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학생을 끝없이 채찍질하는 일, 그리고 부모에게 금전적 부담을 지어주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강사일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일은 제각기 다른 아이들을 똑같은 시험지에 끼워 넣는 일이 아니었다. 난 아이들의 고유하고 특변한 이야기들이 궁금했고, 그들이 나를 통해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나라도 그렇게 이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묻고 싶다.
지금 이대로 우리 아이들은 괜찮은가?
핀아사랑해
어린이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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