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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아사랑해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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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치듯 결혼을 하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다시 부모님을 만나게 되려면 적어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야 될 것이라고 말이다.

2025년,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나와 닮은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민감성 기질인 내가 같은 기질인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이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나를 이해하기란 참 어려웠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불현듯 내 부모가 이해되는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부모의 말속 숨은 뜻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건, 내 마음속 상처로 남아버린 사건들을 돌보는 시간을 통해 다시 아빠, 엄마를 마주할 준비를 조금씩 해나갔다.

저번 주, 나는 처음으로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나빛이와 떠나는 여행 계획을 짜고, 규칙들을 정했다.

규칙 1) 예쁜 말, 고운 말 쓰기
규칙 2) 화가 나면 자리에서 빠져나와 진정된 후 돌아오기 (화난 대상과는 여행 후 따로 만나 문제 해결)
규칙 3) 나빛이를 챙긴다는 명목하에 타인 비난 금지
예) 애 춥게 옷이 이게 뭐냐? (비난임)

나는 아빠와 엄마에게 이 3가지 규칙을 전달하였고, 우리는 속초에서 시작해 대관령에서 끝마치는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속초 바다가 보이는 숙소 창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 같이 해가 뜨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우리의 식탁은 아빠가 사 오신 문어, 엄마가 사 오신 홍게, 내가 사 온 물회로 가득 찼다.

나빛이는 따뜻한 물이 채워진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였고, 매일 노래를 부르던 케이블카도 할아버지가 태워주셨다.

여행 도중, 몇 번의 고비는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아빠를 향해 비난을 퍼붓던 엄마의 입은 나빛이의 재빠른 손에 몇 번 틀어 막혔고, 아빠 엄마의 기차 화통 같던 코골이로 나는 잠을 설쳤지만, 우리는 즐겁게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한 걸음씩 양보하고, 한숨을 참으니, 우리 가족도 여행을 가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나는 놀라웠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고, 그렇기에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나에겐 많은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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