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를 낳은 후, 나는 둘째를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편은 경제적인 문제와 나의 건강 문제등으로 둘째를 낳는 것을 망설여했다.
둘째가 태어난다면 우리는 더 큰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었다. 그리고 나는 첫 째를 낳을 때보다 나이가 들었기에 둘째를 갖는다면 노산이었고, 쌍각자궁으로 인한 고위험 산모였으며, 그리고 최근에 상긴 혈압도 문제였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해보자던 그의 말에 나는 내가 둘째를 왜 이토록 갖고 싶어 하는지를 고민해 볼 무한한 시간을 강제로 부여받았다.
''당신이랑 나는 대화가 안 통해. 그런데 만약 내가 딸이 있다면 딸이랑 대화 나누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대화가 안 되는 건 우리 문제인데, 딸을 낳아서 그 아이한테 그 욕구를 채우는 건, 남편 역할을 그 아이한테 하라는 거잖아. 그건 대리 배우자잖아.''
''...''
남편의 말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나는 원가족과의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역기능 가정의 병리적 관계에 대해 공부하였었고, 그 내용을 남편과 공유한 바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집 안의 ''문제아'' 역할을 맡은 아이이자, 아빠의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역할을 맡은 ''대리배우자''였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 이유로 엄마는 나를 싫어하셨다.
아이가 그저 아이로 지낼 수 없는 환경, 아이가 부모를 살려내야 하는 그 환경을 내가 다시 만들려고 했다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끔찍했다.
내가 둘째를 가지고 싶어 했던 첫 번째 이유는 헛헛한 나의 마음을 채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두 번째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빠가 한 명 있고, 남편은 형이 한 명 있다. 우리 세 커플은 모두 아이를 한 명씩 낳았다.
오빠와 새언니는 첫 째아이를 키우며 둘째를 갖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시는 중이시고, 아주버님과 형님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족 모두에게 전하셨다.
나는 왜 둘째가 가지고 싶었을 까?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이 세 가정은 암묵적으로 어느 가족 행사에서 마주치고, 종종 비교도 당했다. 양육방법부터 누가 더 좋은 부모인지, 그리고 어떤 부부가 가장 사이가 좋은지 따위를 말이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들은 또 다른 손주의 탄생을 바라셨다. 나는 그들에게 칭찬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비교에 맞춤표를 찍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다른 부부들에 비해 관계가 견고하며, 깊이 있게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비교 불가한 우월한 부모이기에, 둘째를 낳을 수 있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부부의 체력적 건강함, 경제적 우위, 정서적 성숙, 부부관계의 만족감등 모든 요소들이 다른 두 부부에 비해 뛰어나다는 증거가 우리 부부가 다른 부부들에게는 없는 둘째가 있는 이유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나는 나를 양가 부모님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충분히 귀하지 않으니, 그들을 기쁘게 만들 뭔가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었다.
내가 나를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고 우월감을 느끼고자 한다는 것은 내가 항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내가 둘째를 갖고자 한 두 번째 이유는 낮은 내 자존감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이유 모두 아이를 낳고 싶은 건강한 이유가 전혀 되지 않는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내가 둘째를 바로 갖지 못하고 이에 대해 고찰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우리 부부에게 둘째가 생길지 안 생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난다면 그 이유는 내가 아닌 그 아이이길 간절히 바라본다.
핀아사랑해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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