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아사랑해 2025. 3. 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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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내가 많이 아픈 아침이다.
아이의 새 어린이집 개학을 앞두고 떠났던 여행 일정이 우리 몸에 무리가 됐었나 보다. 여행을 마친 후, 아이는 목이 심하게 부어 열이 나기 시작했고, 나도 몸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번 여행이 왜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을까? 작년 이 맘 때 시작된 반년 간의 기억이 아직도 나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작년에 아이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우리 집안은 친가, 외가 모두가 대대로 천주교를 믿는 집안이었기에, 아이의 입학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하지만, 유치원에서의 생활은 끔찍했다. 따라야 했던 규칙들은 무수히 많았고, 그 규칙들을 잘 따르는 아이는 착한 아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나쁜 아이였다. 내가 느끼기엔 그곳은 만 3세의 아이들에겐 도가 지나치게 엄격한 공간이었다.

등교를 할 때 아이를 쳐다보던 싸늘했던 수녀의 표정, 아이들이 본인에게 잘 보이려면 뇌물을 줘야 한다는 농담과 함께 까르르 웃어대 그녀가 아이를 가르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결국 반년도 지나지 않아, 아이의 반에서 4명의 아이들이 원을 그만두었다. 매일 아침마다 원에 가지 않겠다며 2시간 동안 우는 나빛 이를 달래고, 혼내던 시간들, 놀이터를 다니며 원에 가기 전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 움직이질 못 하니까, 나는 아이가 원에 들어가기 전 최대한 에너지를 발산해주어야 했다.

그래도 걸려오던 담임의 전화, 오늘은 나빛이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나와 통화하는 척 연기를 하며 나빛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너를 데리러 안 올 거라 거짓말을 했다는 말은 지 입으로 뱉어낸다. 그녀에게는 유기불안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인 것일까?

아이한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훈육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하고 비 효율적인 방법인가. 아이를 그 정도로 통제해야만 하는 원의 지침이 있다면, 그 규칙들을 아이의 나이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본인이 교육자라면 말이다.

나빛이 보다 늦게 들어온 아이들은 다 적응을 했는데, 나빛이는 대체 왜 그러냐고 쏘아대던 그녀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송하다 사과하던 날들을 생각하면 나도 참 부족했다.

나는 결국 그녀의 말대로 아이에게 이상이 있는 것인지 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아무 이상이 없는, 치료도 필요가 없는 정상적인 민감성 기질의 아이이니, 그 유치원을 그만두라고 하셨고, 그 길로 나는 바로 원에서 아이를 구해주었다.

민감성 기질의 아이가 과도하게 엄격한 선생님을 만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던 상담선생님의 말을 듣자, 군인처럼 꼿꼿이 서서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일과 사진 속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후, 내가 그녀에게 아이에게 왜 유기불안을 심어주었나 묻자, 본인이 말해 놓고도 본인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기억을 못 해, 아이가 없던 일을 꾸며내 내게 말한 것이라 또 다른 거짓말을 하던 아이의 담임, 물론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 돈을 벌어야 했었겠지.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러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 상처가 있겠지. 하지만, 같은 선생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교육자는 아니다.

과거의 기억들은 새로운 입학을 앞두고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원에 가기 전 매일 2시간씩 울부짖던 아이, 아이를 비난하던 선생, 그 사이에서 별다른 해결책 없이 그 모든 감정과 비난을 받아내야 했던 중간역할의 내가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무리하게 여행을 떠났고, 결국 지금의 나와 아이는 둘 다 아프다. 이 작은 녀석이 나를 따라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다.

그렇게 새로 입학하게 된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부모와 교사들이 조합원이 되어 만든 어린이집이다. 과거 학원을 뺑뺑이 도는 아이들을 구하고자 동네 주민들이 아이를 가정에서 돌봐주시던 것이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아 시작된 이곳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1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일하시는 교사분들은 내가 책에서 배워온 육아를 실제로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빛이는 집에 가기 싫다고, 도롱뇽 더 찾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 반 년동안의 실패는 경험이 되어, 다음번에 나와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와 아이를 키워준 걸까?

그 성장의 값으로 우리가 오늘 이렇게 아픈 건 아닐까.라고 꾸며댄다면 내 마음이 조금 편할지도 모르겠다.